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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명 |
우즈베키스탄 (Uzbekistan) | |
공식 명칭 |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Republic of Uzbekist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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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구 |
26,009,000 | |
면 적 |
447,400 ㎢ | |
수 도 |
타슈켄트 | |
정체·의회형태 |
공화제, 다당제, 단원제 | |
국가원수/ 정부수반 |
대통령 / 대통령 | |
공식 언어 |
우즈베크어 | |
독립년월일 |
1991. 8. 31 | |
화폐단위 |
숨(sum, 복수형 su) |
1991년 소련에서 독립했다. 북쪽과 서쪽으로 카자흐스탄,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서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짧은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수도는 타슈켄트이다. 면적 447,400㎢, 인구 25,640,000(2003 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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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부 언어 혹은 투르크어의 분파인 차가타이어를 사용하는 이슬람 민족인 우즈베크족이 전인구의 7/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인구의 1/10 미만이며, 타지크인·카자크인·타타르인·카라 칼파크스인들이 소수 민족을 이룬다. 비교적 낮은 사망률과 매우 높은 출생률로 인구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인구가 가장 많이 밀집된 지역은 동쪽 끝에 있는 페르가나와 이에 연결된 계곡들, 그리고 남중부 지역의 제라프샨 강 계곡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 아시아의 주요 면화 재배국이며 세계 최대의 면화 생산국이다(→ 목화). 카라쿨양 사육과 양잠업 또한 중요하며, 이외에 목축 및 멜론·포도 등 다양한 과일·야채 재배가 농업의 나머지 부분을 이룬다.
천연 가스의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며, 상당량의 석유·석탄과 다양한 금속 광물이 매장되어 있다. 쿠라민 산맥에는 구리·아연·납·텅스텐·몰리브덴 광상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기계와 중장비의 주요생산지이다. 화학 산업은 우즈베키스탄의 면화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목화밭에 필요한 비료를 생산하는 한편, 면화 가공의 부산물과 폐기물로 여러 가지 화학제품을 생산한다.
원래 소비에트 정부 형태를 근거로 했던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우즈베키스탄공산당(Communist Party of Uzbekistan/CPU)이 모든 부문에서 사실상의 권력을 쥐고 있었다. 야당을 조직하는 것이 허용되었으나 나중에는 탄압을 받았고, CPU가 인민민주당(People's Democratic Party)으로 개칭하고 1994년 치러진 선거 이후에도 계속해서 권력을 잡고 있다. 1992년 헌법상 행정수반은 대통령이고, 입법기관은 최고회의다.
6∼14세는 의무교육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소비에트 통치의 붕괴를 전후로 한 몇 년 동안 공립학교 교과과정을 러시아식에서 우즈베키스탄식으로 변경하는 데 착수했다. 부하라·히바·사마르칸트에 있는 수세기 된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들은 소비에트 통치 기간 중 주정부의 재정에 의존했으며 지금도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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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세기 동안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 문화의 중심으로 주목받아왔다. 이 지역 출신의 뛰어난 중세 학자로는 9세기의 수학자 무사 화레즈미, 10세기의 박학다식한 철학자 아부 레이한 알 비루니(973∼1048), 사마르칸트에 천문대를 세운 15세기 천문학자 울루그 베그, 15세기말의 시인 알리 시르 나바이가 있다. 소비에트 통치 기간중에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의 문화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카자흐스탄의 여러 지역들은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몽골 제국을 비롯해 다양한 중앙아시아 제국들의 일부분을 이루었다. 많은 우즈베크인들이 몽골의 보호하에 지금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는데, 이들이 '방랑자' 또는 '독립자'의 뜻을 가진 카자흐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은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선조와는 달리 유목민으로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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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크인들의 역사적 기원은 13세기 몽골족에서 시작한다. 13세기경 징기스칸의 손자인 시바칸은 시르다리야 북쪽, 즉 서쪽으로는 우랄 산맥과 동쪽으로는 이르티시 강 사이의 영토를 유산으로 받았다. 시바칸이 이끄는 몽골족은 '황금 군단'(Golden Horde : 몽골 제국 서부)의 일부분을 형성하고 거의 100개의 주요 투르크 부족들을 지배했다. 이 부족들이 결국 몽골족들과 혼인해 우즈베크인들과 중앙 아시아의 다른 투르크계 민족들이 되었다.
1우즈베크라는 이름은 14세기의 칸 우즈베크라는 인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통치하에서 '황금 군단'은 전성기를 누렸으며, 약 1340년 이후 그가 통치했던 영토는 '외즈 베그(또는 우즈베크)의 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부 알 하이르 칸(1468년 사망) 통치 시대에 몽골-우즈베크인들은 남동쪽으로 이동해 시르다리야 북쪽 강안에 다다랐다. 아부 알 하이르의 손자인 무하마드 샤이바니 칸 통치 시대에는 16세기초 우즈베크인들이 결성한 부족 연맹이 부하라와 사마르칸트의 정착 지역을 침입해 점령했고, 나중에는 우르겐치와 타슈켄트 지역까지 점령해 티무르 왕이 세웠던 옛 제국을 무너뜨렸다. 트란속사니아('옥수스를 넘어서')로 불리는 이 지역은 우즈베크인들의 영구적인 고향이 되었다.
이 시기에도 우즈베크인들은 단일혈통과는 거리가 멀어 고대 이란 지방 민족들의 후손, 투르크어를 쓰는 부족들, 몽골족 대군주들의 혈통이 섞여 있었다. 트란속사니아를 점령한 후 카를리크족과 위구르족 등 다른 부족들과의 혼혈이 심화되었다.
샤이바니의 우즈베크 왕조는 1598년까지 트란속사니아를 통치했고, 이후 이 지역은 여러 민족들의 점령기를 거치면서 점차 물질적 번영과 문화생활 수준이 쇠퇴하게 되었다. 19세기 무렵 우즈베크인들은 더 이상 정치적·민족적 결합체를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으며, 이들의 영토는 명목상 부하라·히바·코칸트 칸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 세 지역은 1855∼76년 러시아가 팽창하면서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1924년 소련 내에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이 세워졌다.
한국과는 1992년 1월 29일 수교했으며, 같은 해 2월 7일 북한과도 수교했다. 1993년 12월 21일 우즈베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이 설치되었으며,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은 1996년 1월에 설치되었다.
주요협정체결 현황을 보면 1992년 6월 투자보장협정, 무역협정, 과학기술협정, 사증발급양해각서, 1994년 6월 항공협정, 문화협정, 1995년 2월 교육협력양해각서 등 여러 부문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96년 대한수출액은 1억 9,610만 달러였고 대한수입액은 4억 9,383만 달러였다. 1997년 현재 교민수는 22만 명이고 체류자는 35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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